호남 제일의 정자 정읍 태인 피양정 보물 제289호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89호로 지정된 호남제일의 정자로 불리는 피향정은 신라 정강왕1년(886) 최치원(호 고운)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에 풍월을 읊고 소요하던 연못가에 세워진 정자라 하여, 그 이름이 알려져 왔으나 누정의 창건연대는 분명치 않다. 안내문에는 현재의 건물은 1716년(조선 숙종 42)에 현감 유근이 고쳐 지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피향정은 한때 태인면 사무소(6.25전쟁 후)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읍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는 "기록 증보문헌 비고에 의하면 광해(1608∼1623)때 현감 이지굉(1615∼1618)이 중건하고, 현종때 현감 박숭고(1661∼1664)가 또 초라한 건물을 확장하여 중건하고, 현재의 건물은 숙종42년(1715) 현감 유근이 전라관찰사와 호조에 교섭하여 정부의 보조로 부안 변산에서 재목을 베어다 세운 것이다. 그리고 철종7년(1856) 현감 이승경이 인부 2,692명 장인(토공, 목공) 577명, 엽전 1,600량을 들여서 동량은 그대로 두고 모두 갈았다.' 라고 안내하고 있다.
피향정은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마루 아래에 28개의 원형 돌기둥을 받치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피향정은 주변의 연지와 함벽루 등 과 어울리는 모습이 고풍스러워서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피향정의 건물 안쪽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지만 건물 오른쪽과 왼쪽 사이에의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피향정 입구와 하마석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호남제일정 현판이 있는 정자의 모습이 보이지만 입구와 하마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출입문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출입문을 지나 우측에 피양정이라 쓰인 현판이 있는 정자의 정면 모습을 볼 수 있다.
피양정 도로변의 안내문
피양정 비석군 1970년경에 태인 곳곳에 있는 비석들을 옮겨 세웠다고 한다. 홍범식 순국열사의 비석도 있다.
함벽루와 연지
피양정 앞으로는 연지가 있고 함벽루가 있다. 원래 피양정의 앞과 뒤에는 상연지와 하연지라는 연못이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으나 상연지는 일제 강점기 때 메워지고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다.
상연지(피향정 동북편)는 원래부터 있었으나 하연지(지금 연못)는 영조20년경(1740년경) 현감 오언부가 새로 판 것이라 한다.(태인현지)
함벽루
함벽루의 편액은 한말의 서예가인 김돈희(金敦熙 1871~1936)의 글씨이다.
피양정 앞 함벽루 입구에는 태인현감이었던 신잠(申潛 1491~1554)을 기리기 위해 1545년(중종 39)에 세운 공적비인 신잠비(申潛碑)가 있다.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05호.
은은한 향과 아름다운 자태로 유명한 피향정 연꽃 개화 소식이 전해지면 사진작가들을 비롯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연꽃이 만개하는 7월에 다시 한번 들려보기로 계획하고 인근에 있는 태인동헌과 태인향교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