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의 배경으로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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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180에 위치한 아리랑문학마을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 ~ 오후 6시까지이며 1월 1일, 매주 월요일(다만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문의 전화는 063) 540-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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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문학마을 일제수탈관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수탈관 - 일제수탈기관 - 외리마을 - 내촌마을 - 하얼빈역사 - 이민자가욱 순으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다양한 체험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특히 본인 직접 그린대로 살아나는 3D 역사체험콘텐츠 라이브스케치 체험과 전통놀이, 전통문화, 인력거, 고무신 신기 등 로스트 404 야외방탈출&추리게임 앱을 다운 받아 이야기를 추리하고 미션을 완료하는 이색적인 체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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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수탈관은 쌀가마니와 논을 형상화 한 시설로 일제 식민침탈의 전 과정, 호남 김제만경평화 수탈사, 국내외 독립운동의 조명을 통해 과거·현재·미래의 항구적 독립의 의미를 다지는 전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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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는 의병은 두 팔 뒤로 묶여 작두날에 목이 1/3쯤 잘리고 있는 울부짖고 있는 의병의 모습이다. 김래환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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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공 적선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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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진하는 독립군은 두 손에 총을 비켜들고 적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독립군의 모습으로 김래환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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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공 적선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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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공 적선불망비 뒷면

 

본 비석은 구마모토 리헤 이(熊本 利平)의 은덕으로 가뭄에 종자를 대어 추수가 가능했다는 내용이다. 구마모토 리헤이는 1930 〜 1940년 군산 개정에 본거지를 두고 1개 부(당시 군산), 5개 군(김제•정읍 등) 26개 면, 1,200만평의 땅을 소유한 전북 최대의 일본인 지주였다. 구마모토의 농장경영은 일본인과 똑같은 고액의 월급으로 조선인 관리자를 고용하고 일본에서 관리자를 통해 소작농들을 원격 관리하는 방식으로 비료와 최신 농기구를 빌려주고 고리의 소작료와 비료대, 기계사용료까지 착취하였다. 그 바탕에는 생산력 증대를 통한 쌀 수탈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작동하였다. 일제수탈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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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수탈기관은 일제강점기 민중의 생활을 대선하기 위한 시설 이라는 미명하에 민초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던 주재소, 면사무소, 우첵구, 정미소 등 수탈대표기관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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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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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주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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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소는 1면 1주재소를 원칙으로 조선 전역에 설치된 일본 경찰의 최일선 최하위 조직으로, 최고 책임자는 해당 지역 경찰서장이 임명한 소장이었으며, '순사 巡査' (왜경·일경)가 근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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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 순사 온다.”

 

◇  1920년대 초,순사는 “높은 교육을 받지 않고도 상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비교적 취직이 쉬운 직업” 이었다. 그러나 경찰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동네 사람과 친척 등 50〜 60명이 줄을 지어 환송” 하는 환대를 받았고, 주재소에 배치되어서는 “면민 80여 명이 모여 환영회를 베풀어줬고 … 면민 모두가 굽실굽실 하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  그러나 주재소의 순사는 탄압과 감시와 억압이 심해 증오와 공포의 대상 이었다. 이에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왜놈 순사 온다.” 는 말이 생겼다. 이들은 일본 육군 헌병 하사관 또는 일본 본토에서 차출된 경찰로 자질이 형편없었다. 반면, 조선인 순사 중에는 자발적 친일순사의 악명이 높 았다.

 

◇ 주재소의 순사는 첩보 수집은 물론 정치사찰(신문과 출판물 • 집회와 결사 • 종교 • 기부금 단속),사법(범죄즉결 • 민사소송 조정 • 검사업무 대리 • 집달 업무 • 호적사무) 경제(납세 독촉 • 국경 세관 업무 • 밀수입 단속 • 국고금과 공금 경호, 부업 • 농사 • 산림 • 광업 등의 단속), 학사 (학교 사찰 • 일 어 보급), 외사(여권 교부,도항 • 체류 금지자 단속,국내외 거주이전 통제), 조 장 행정(법령 보급 • 농사 식목개량 • 부업 장려), 위생(종두 보급 • 전염병 예 방 • 도살단속) 등 무소불위의 권능을 갖고 있었다. 아리랑문학마을 일제수탈기관 주재소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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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만경평야지역을 돌아보면 아직도 사진과 같은 정미소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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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우체국은 1884년(고종 21) 4월, 우정총국과 인천 분국의 설치를 기원으로 하지만, 동년 12월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이 폐지되고 우편제도도 중지되었다. 그 후 1895년 7월 22일, 한성과 인천 등 24개소에 우체사를 설치해 근대적 우편업무를 시작하였다. 이처럼 자주적으로 시작된 우정업무였지만, 1905년 4월 일본의 강압에 의 해 「한국통신기관 위탁에 관한 협정」을 맺고, 다음 해 『통감부통신관서 관제」가 공포됨으로써 통신망을 일본에게 빼앗겼다. 이후 일본은 통신망을 전국으로 확장시키고 정비하였다. 결과적으로 우체국은 정치 • 군사• 경제의 식민지적 지배를 관철시키려는 일본의 식민통치도구가 되어 정보수집 기관으로 이용되었다,

 

 

◎  조선총독부가 체신국을 앞세워 전쟁비용을 조달할 목적으로 조선인을 강체로 가입시킨 보험은 1929년 10월, 전국의 우체국 조직을 이용하여 판매한 ‘간이생명보험’ 이었다. 체신보험의 대부분은 종신보험으로 보험료는 5만원〜10만원, 보험금은 2천〜3천만원이었다. 이외에 소아(어린이)보험, 20년 만기 양로, 교육 · 결혼자금, 자애보험 등의 보험이 있었다. 이렇게 강제로 가입시킨 대다수의 보험은 일본의 전쟁자금으로 사용되었고, 일본의 패망으로 원금은 고사하고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하였다. 아리랑문학마을 일제수탈기관 우체국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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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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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광장 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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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당산나무는 하늘 뜻을 받들어 땅에 내리고, 땅의 바람을 받들어 하늘에 올리는 고결한 일을 해낸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 전체를 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당산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아리랑 2권, 26. 번뇌의 불)

 

조선인에게 당산나무는 고사터, 잔치마당, 회의장, 휴식처, 놀이터, 재판장 등 마을 공동체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며 고향, 뿌리, 마을공동체를 환기시키는 대동(大同)의 상징이었다.

 

아리랑에서는 무수히 많은 죽음이 다루어진다. 그 중 조선총독부가 강압적으로 추진한 토지조사사업에 이의를 제기한 차갑수는 마을공동체의 상징인 당산나무에 묶여 공개적으로 총살형에 처해진다. (아리랑 4권 1.  대지진)

 

일제당국에 의해 자행된 ‘당산나무 처형’ 은 마을공동체의 가장 신성한 공간을 훼손하고 해체함과 동시에 민중에게 두려운과 공포를 심는 효과적 수단이었다. 이것을 식민지 민중과 산하가 함께 겪어야했던 피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아리랑문학마을 당산나무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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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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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의 ‘가마쓰’에서 비롯된 가마니 (かます)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왔다. 가마니 수급을 위해 학교에서 학생들을 동원하여 가마니짜기 경연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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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절구, 지게, 물지게, 다듬이 등 초가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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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과 외리마을은 소설 아리랑의 발원지인 김제 죽산면 내리·외촌마을을 각 등장인물의 가옥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 들의 수탈과 고나의 삶을 소설속 주인공의 생활터전을 통하여 느껴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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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 가는길

하얼빈역사와 이민자가옥은 따로 포스팅하여 소개한다.



  1. 소설 아리랑의 배경 김제 아리랑문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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