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정읍 태인의병 주둔지 태인향교
泰仁鄕校 Taeinhyanggyo Confucian School
태인향교는 1421년(세종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태인면 서쪽 3리 지점에 창건되었다. 1510년(중종5)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복원하였다.
태인향교는 최익현 의병장이 이끄는 태인의병이 며무르며 전력을 강화 하였던 곳으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기도 하다. 최익현은 1900년 4월 충청남도 정산으로 내려와 있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라북도 태인으로 내려가 1906년 6월 4일 임병찬과 함께 무성서원에서 태인의병을 일으켰다. 태인의병이 곧바로 태인읍으로 진격하자 태인군수는 의병의 기세에 눌려 달아났다. 태인의병은 태인향교에 머무르면서 관아의 무기를 확보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전력을 강화하였다. 1906년 6월 5일 태인을 떠난 의병은 정읍 • 곡성을 거쳐 순창까지 진격하였고 6월 11일 순창에서 관군과 마주치자,최익현은 일본군이 아닌 같은 민족과의 싸움을 피하고자 태인의병을 해산하였다고 한다.
만화루는 태인 향교 정문 위에 세운 2층 누각이다. 만화루란 말은 '공자의 도로 만물이 교화된다’ 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만화루의 유래는 확실하진 않지만,왕비나 정승등 높은 사람이 출생한 고을에 세웠다고 한다. 실제로 단종 왕비 정순왕후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가 바로 이 지역 출신이다. 이 만화루는 조선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정면을 짝수인 4칸으로 만들고 출입문을 두 곳으로 나누어 낸 점과 넓은 계단이 특징이다. 만화루 현판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태인 현감으로 부임한 조항진의 글씨이다.
태인향교의 문은 닫혀 있었다. 만화루앞에는 관리상의 어려움으로 부득이하게 상시 개방을 못하고 있으니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태인면사무소와 전교에게 연락을 하라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담장너머로 대성전과 명륜당을 촬영은 할 수 있었기에 연락하지 않았다.
동무와 서무, 동재와 서재는 보이지 않는다. 태인향교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만화루(萬化樓)를 비롯 장수재 (莊修齋)·양사재(養士齋)·사마재(司馬齋)·고직사 등이 있다고 하는데 만화루, 대성전, 명륜당과 대성전 좌측에 있는 고직사로 보이는 건물이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태인향교 명륜당
태인향교 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5호
<사진제공 임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