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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변산반도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고승대덕 스님들을 배출한 호남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제 사찰인 부안 능가산 내소사를 들렸다. 부안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여행중 이라면 내소사는 여행 코스중 빠질 수 없는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내소사에는 두 그루의 당산나무가 있는데 일주문 앞에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있고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숲을 걸어 천왕문을 지나면 정면 좌측으로 할머니 당산나무를 볼 수 있다.

 

 

내소사 할아버지 · 할머니 당산나무는 1,000여 년의 시간을 지나온 성스러운 느티나무로 마을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고, 매년 1월 14일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마을주민들과 스님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가 열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입암마을은 문화체육부가 개최한 2014 작은공동체 전통예술잔치 우수축제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내소사 일주문
내소사 사찰관람료 및 주차요금 안내 내소사 홈페이지 캡춰

 

 

한국의 아름다운 길 내소사 전나무 숲

 

내소사 일주문을 지나니 활짝 핀 상사화가 반겨 준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전나무 숲길이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내음은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내기에 적격이며, 사색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공간이다.

 

 

전나무 숲길 입구에 2023학년도 대학입시 수능백일기도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입재일은 8월 10일이고 회향일은 11월 17일이라고 하는데 아 벌써 8월 말이니 2023 수능도 얼마 안남다.

 

 

오대산 월정사, 광릉 국립수목원과 함께 한국의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인 내소사 전나무 숲의 전나무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보고나 건물인 수다라장, 양산 통도사, 강진 무위사 등 사찰 전각의 목재 기둥으로 쓰이는 우리나라 대표 건축재이다. 내소사 전나무 숲도 400여년전 사찰 중건 당시 우수한 목재를 사용하기 위해 조성되엇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태풍에 스러진 전나무

 

내소사 전나무 숲에는 태풍에 쓰러진 전나무를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죽어있는 나무는 곰팡이, 곤충, 그리고 살아있는 나무에서는 살지 못하는 군류까지 다른 생명이 살 수 있도록 집과 먹이를 제공한다.

 

 

내소사 탐방로 입구 관음봉은 1.8km, 직소폭포는 3.6km로 왕복 4시간 정도 걸린다.

직소폭포는 변산8경중 하나로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을 보지 않고서는 변산을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산의 으뜸가는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천왕문

 

사천왕상을 봉안안 내소사 천왕문은 사찰 경내 출입문의 역할도 겸하고 있으며, 17평의 목조 한와 맞배지붕으로 1986년에 우암 혜산선사가 신축하였다. 편액은 일중 김충현 거사의 글씨이고 주련글귀는 해안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이다.

 

내소사 천왕문 연등 모연
사진 좌측부터 서방광목천왕과 북방다문천왕 이고 우측 사진은 동방지국천왕과 남방증장천왕이다.
내소사 전경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는 백제 무왕34년(633)에 창건된 전통 문화재 사찰로 임진왜란때 절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조선인조11년(1633) 청민선사가 대웅보전을 비롯 설선당 등을 중건 중수 하였다.

그 후 광무 6년(1902) 관해선사와 만허선사의 원력으로 증축불사가 있었으며, 전등회 조실이신 해안 선사의 참선지도로 인하여 수많은 사부대중이 모여 수행정진하는 도량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현재의 내소사를 있게한 우암 혜산 선사가 1983년 내소사에 주석하면서 다시 한 번 쇠락해진 전각 및 요사를 정비, 복원하여 오늘날의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혜구두타 스님이 창건 당시 소래사라 하였는데 내소사라 부르게 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내소사로 불러 온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보물로 대웅보전과 고려동종이 있고 보물 제278호 법화경절본사본은 전주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중앙 좌측으로 할머니 당산나무가 있다.
내소사 할머니 당산나무
보종각

 

보물 제277호(1963년 1월 21일 지정)인 내소사 고려동종은 고려시대 종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종의 고리 부분은 용 모양과 피리 모양인 음통으로 장식되었고, 뚜껑 부분에는 입상화문대(立狀花紋帶)로 꽃잎들이 세워진 모양이며, 몸통 부분의 띠는 모란과 식물 문양을 그려 넣어 고려 후기 양식을 나타낸다. 종 가운데에는 삼존불이 연꽃에서 피어난 구름 위에서 정좌하고 있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에 소재한 청림사에서 제작되었으나 청림사가 폐사된 후 오랫동안 매몰되었다가 조선 철종 4년(1853) 내소사에 옮겨졌다.

 

봉래루 (蓬萊樓)

 

봉래루(蓬萊樓)
조선 태종 12년 (1414)에 건립한 전면 5칸, 측면 3칸, 2층 누각의 맞배지붕의 건축물이다.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하였는데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 2층 누각을 받치는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수평을 취하게 하였다. 이들 초석의 배치는 전면 5칸 12.23m로 각 기둥 사이가 215-244-305-244-215cm로 중앙의 칸으로 갈수록 넒어지고 있다.측면은 외열 기둥 사이가 3칸으로 6.20m이며 각 기둥 사이는 215-190-215cm의 간격으로되어 있지만 내부는 2칸으로 각 칸이 310cm를 유지하고 있다.봉래루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1821년에 기록된 “내소사 만세루 상량문”, 1823년에 걸어 놓은 “내소사 만세루 중건기”현판과 특히 최남선의 <심춘순례>의 “변산의 사대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여기서부터 전나무 자욱한 축동으로 들어서서 그것이 다 하는 곳에 “만세루”라는 높은 다락이 앞에 나섬은 이미 내소사에 다다른 것이다 일변에는 봉래루라는 현판을 달았으니.....이상의 문헌들을 통해 1823년에 “만세루”란 이름으로 중건하였으며 이 후 “봉래루”란 명칭의 현판을 달았고. 1926년 이후에야 비로소 “봉래루”란 명칭으로 정착되어진 듯하다.봉래루에 오르면 정지상의 시와 그 주위로 정지상의 원운을 차운한 시가 여러 수 있으며 중창기, 송덕기.시주질 등 36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내소사 홈페이지 전각 소개 참고

 

대웅보전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
내소사 삼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1986년 9월 8일 지정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3층석탑은 2중기단으로서 화강암질로 되어있습니다. 하층기단은 전고 3.46m, 폭 1.43m이며 1장의 석재에 지대석, 면석, 갑석을 각출하였고, 면석에 우주와 장주를 각하였다. 이갑석의 상면은 상대중석 받침쪽의 높은 경사를 이루고 중석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대중석의 경우도 모두 1매의 석재로서 면석에 우주와 면석중앙에 장주가 하나씩 모각되었습니다. 2단의 탑신받침 각출과 하단받침을 말각하였습니다. 이 갑석의 아래에 갑석부연을 각출하였습니다. 탑신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되어 있고 2층의 탑신석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하게 체감되었습니다.옥개석은 각층이 1배의 석재로 되어 있고 4단의 받침이 있습니다. 3층 옥개석 상면의 노반이 있는데 이 노반의 윗부분은 상대갑석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고 크고 작은 구형의 석재 2개가 올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내소사 홈페이지 성보문화재 소개 참고

 

내소사 대웅보전 보물 제291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관음조가 그렸다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인간의 솜씨를 넘은 성스러운 모습이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물론 사람에 따라 안보일 수도 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있다.대웅보전은 높게쌓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40尺×35尺의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단층 팔작집이다. 기둥간살은 넓은 편이며 중앙칸은 더넓으며, 기둥은 두껍고 낮아 평활하며 모서리 기둥에는 배흘림이, 안기둥에는 민흘림으로 안정감이 있다.

대웅보전의 공포는 외3 출목 내5 출목으로 내외출목간의 차이가 심한편이어서,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내부공간은 높은 천장을 가지게 된다. 외부에서 공포는 살미끝이 심한 앙서형이고 살미에 연봉형의 조각이 새겨져 매우 장식적이고, 내부의 공포 역시 살미끝을 앙서형으로 처리했고 중도리 열주쪽은 빗반자를 사면으로 돌리고 그것을 다시 조각하였다. 정면창호는 2짝-4짝-2짝 구성으로 보다 더 안정감이 있으며 창호에는 정교하게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꽃 등의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 전설속의 목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수백년의 세월속에 채색은 다 지워지고 나무결 무늬만 남아있지만 만져보면 감촉이 참 좋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조선후기 유명한 서화가)가 쓴 글씨다.내부의 후불벽은 측면의 기둥열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내부공간을 확보하고 후불벽을 형성하였고 후불벽 뒷부분에는 유명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는데, 이 그림은 바위에 앉아있는 백의를 입은 관음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백색의 天衣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불단의 기둥을 뒤로 물려 넓은 내부공간을 이루며 상부의 포작들은 연꽃봉오리모양으로 조각되어있고, 천장에도 가득히 장식을 했다. 안팎모두 장식으로 충만해 있지만 적절히 절제되고 통일되어 있어서 번잡한 인상은 주지는 않는다.
내소사 홈페이지 성보문화재 소개 참고

 

목조아미타삼존불상(木造阿彌陀三尊佛像)

 

내소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던 삼존불상은 조선 인조 11년(1633)에 청민선사가 조성하여 봉안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5호로 2018년 3월 9일 지정됐다.

 

수백년의 세월에 채색이 지원진 단청

 

내소사의 단청단청은 전체적으로 내·외부 모두 금단청 형식으로 용문양을 비롯해 학, 봉황, 주악천인, 매화도 등이 그려진 계풍별화와 나한도가 그려진 판벽화, 그리고 불상이 표현된 포벽화 등 다양한 소재의 문양과 회화작품이 포함되어 있다.특히 내부단청은 고식古式으로 18세기 단청의 특징을 보이고, 외부단청은 박락이 심해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주요 체목부 부재의 문양은 직휘, 머리초, 휘, 계풍, 풍혈로 구성되어 있다.

천장부에는 주화문을 중심으로 한 종다라니 문양이 있고 어칸 우물반자에는 범서를 포함한 8엽연화문·모란문·쌍학문·연화문이 확인되고, 협칸에는 가야금·생황·월금·나발·바라·장구·절고·해금·비파·박拍의 10가지 악기가 그려져 있다.주요 체목부에는 금실을 두른 녹색 꽃문양으로 병머리초 형식 또는 역병머리초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계풍에는 금문을 바탕에 두고 풍혈을 만들어 그곳에 별화를 넣는 경우와 계풍에 바로 별화를 표현한 경우가 있다.

대량머리초의 구성을 살펴보면 뒷목에는 칠보여의완자운문이 들어갔으며 직휘에는 결련금문을 넣고 머리초는 금실을 두른 녹색 연꽃문양을 문양으로 한 병머리초 형식이다. 휘는 인휘로 3개가 있고 휘끝에는 이중쇠첩을 표현하였다. 계풍에는 용문을 넣었고 뱃바닥은 색긋기로 표현하였다.
내소사 홈페이지 참고

 

조사당은 6평의 목조한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내소사에 주석하셨던 조사 스님들을 봉안한 전각이다.

 

좌측 위로 보이는 전각이 삼성각으로 1941년 능파스님이 건립하였다.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봉안하기 위하여 6평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86년과 93년 2차에 걸쳐 우암혜산선사가 보수, 해체 복원하였다. 원래는 법당을 바라보고 동향(東向)으로 건립되었으나 법당과 같은 방향인 남향(南向)으로 바꾸어 세웠다 삼성각의 현판은 구당의 글씨이다.

 

지장전은 21평의 목조한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지장보살과 명부10왕을 봉안한 전각으로 2010년 건립하였다.
설선당 (說禪堂) 전라북도 유령문화재 제125호 1986년 9월 8일 지정

 

설선당은 내소사의 대중 요사로서 승려들의 수학 정진과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건물은 보기드문 '□'자형을 하고 있으며, 지면의 높이 차를 이용하여 건물의 일부를 2층으로 구성하였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넓은 대방과 승방, 부엌 등이 배치되고, 2층의 고루(高樓: 높은 다락집)는 각종 곡물 등을 저장할 수 있도록 벽면에 여러 개의 환기창을 설치하였다. 건물의 지붕선이 뒤쪽에 보이는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이 건물은 1640년(인조 18)에 내소사를 중건할 때 같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선당에 걸려 있는 내소사 편액
설선당 대웅보전 쪽 정면
범종각은 13평의 팔작 한와지붕으로 1995년 당시 주지였던 철산스님이 대범종, 대법고, 목어, 운판등 4물(四物)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무설당 (無說堂)

 

정면 7칸, 측면4칸의 45평의 팔작지붕 한와지붕에 ㄱ자형의 목조 건축물로 해안선사의 “능가산의 유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 만허화상의 구전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년 전까지 당시 서편에 지금의 동승당(東僧堂, 說禪堂)과 동일한 건물이 있었는데 동민의 부주의로 인해 실화소각을 당할 때에 사적까지 소실되었는데.....

이후 잡초가 무성하여 옛자취를 찾을 수 없고 1990년에 우암 혜산선사가 옛 고지에 현 무설당을 복원 건립하여 주지실과 승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동편에 있는 관심당 (觀心堂)은 1911년 관해선사가 선실로 건립하였으며 주지실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삼십삼관음성지 제8호인 내소사는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내방객들에게 사찰체험을 돈독히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운영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 천년고찰 부안 능가산 내소사

    부안의 변산반도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고승대덕 스님들을 배출한 호남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제 사찰인 부안 능가산 내소사를 들렸다. 부안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여행중 이라면 내소사는 여행 코스중 빠질 수 없는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내...
    Date2022.08.27 By전북넷 Views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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