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정읍 고부향교 古阜鄕校
전주에서 몇일 쉬는 틈에 한국의 향교중 전라북도에 있는 향교 중에 아직 촬영하지 못한 곳을 마무리 하기로 하고 정읍지역을 목표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김제 금구향교를 거쳐 태인향교 - 고부향교 - 정읍향교 순으로 돌아 본 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정읍 칠보의 무성서원에도 들렸다. <사진 및 자료제공 임영식작가>
고부향교는 1403년(태종 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 및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597년(선조 30)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였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4호로 1984년 4월 1일 지정되었다.
고부향교 외삼문
고부향교 외삼문 옆 건물이 명륜당이다.
고부향교 내삼문
외삼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전으로 향하는 높은 돌계단 위의 내삼문이 보인다. 돌계단을 올라보니 간격이 높아 위험해서인지 우측 양사재쪽에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이용하고 있었다.
내삼문 계단 우측의 울창한 나무는 1997년 보호수로 지정 당시 400년된 은행나무이다. 수고는 18m이고 둘레는 4.1m 이다.
고부향교 서재
옛날에는 명륜당 동쪽에 동재가 있었으나 동재 자리에는 고부초등학교 운동장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서재는 일정(日政)때에는 일본 사람의 것이였는데 광복후에 적산(敵産)이라 하여 개인에게 불하하였던 것을 1962년에 전교(典敎) 전용록(全用錄)이 계금(契金)으로 사들여 그 집을 헐고 다시 지었고 한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바로 우측에 명륜당이 붙어 있다. 고부향교 역시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 방식이지만 명륜당이 대성전과 마주하고 있다.
고부향교 양사재
명륜당과 외삼문, 우측 비석뒤로 보이는 건물이 서재이다.
고부향교 내삼문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향교에 공자를 모신 대성전을 두고 유학을 장려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가운데 모시고,동•서쪽으로 맹자 등 네 성인, 안연 등 공자 제자 열 사람, 주자 등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여섯 사람을 함께 모셨다. 신라시대 설총을 비롯한 우리 나라 유학자 열여덟 분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향교에서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 향불을 피워 분향례를 올리고 매년 봄•가을에는 석전대제를 지낸다.
고부행교 동무와 서무
고부향교를 나와 인근에 있는 고부관아터로 향한다. 고부관아터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된 1894년 1월 10일 고부봉기때 전봉준을 중심으로 농민군이 점령하여 탐관오리를 몰아냈던 역사적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