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고속도로에서 남하가조IC로 나와 거창 허브빌리지와 심소정, 농월정을 경유하며 전주까지 계속 26번국도를 이용하여 백두대간 육십령을 넘는다. 지금은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최장 터털인 3,170미터의 육십령터널이 있어 비교적 한적한 도로지만 육십령은 신라때부터 개통된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사이에 있는 육십령은 신라 때부터 요해지(要害地)로 유명했고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 이상의 무리를 지어서 고개를 넘어야 도둑떼를 피할 수 있다거나 재몬당까지 60여 굽이가 된다고 해서 붙여졌다 한다. 또한 장수감영에서 육십령 정상까지가 육십리이고 안의감영(현재의 함양 서상)에서도 육십리라 육십령이라 했다는 말도 전해 진다.
높이 734미터로 육십현(六十現),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한다.
백두대산 육십령터널
국도 26호선이 통과하는 육십령고개 고개 정상의 ‘백두대간 육십령터널’은 이는 땅을 파서 만든 터널이 아니라 백두대간의 생태계 보호를 위한 생태통로를 도로 위에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터널이다.
임진왜란 당시 적장을 부둥켜안고 진주의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고향이 육십령 아래 장계면에 있다.
육십령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수군 계남면
육십령고개에는 국가보훈현충시설(52-2-46)인 충영탑이 세워져 있다.
이 충영탑은 1950년 6.25사변 직후 국군8사단, 11사단, 수도사단에서 덕유산지구 공비토벌을 위하여 작전을 수행하다 산화한 국군영령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1954년 6월 16일 장계남산공원에 육군7839 부대장 대령 김동혁이 세웠으나, 백화여고 설립으로 1991년에 덕유산과 인접한 이곳 육십령에 이전하게 되었다.
충영탑 뒷면 연혁을 보면 당시 비문에는 “육군소령 신창식 이하 55명은 덕유산지구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고이 잠들다” 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매년 현충일이 되면 많은 군민이 이곳을 찾아 참배하고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으며, 후세들에게 숭고한 애국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다고 새겼다.
국가 보훈처에서는 본 충영탑을 2003년 12월 8일현충시설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육십령휴게소 한쪽 장수군 장계면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육십령루(六十嶺樓)가 세워져 있다. 휴게소 광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여룸에는 나무에 가려 잘 안보일 수 있다.
육십령루
육십령루기는 金祥斗 장수군수의 글로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이곳은 해발 730미터에 위치한 육십령정상으로 덕유산에서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줄기 호남과 영남의 문패를 단곳이다.
또한 서쪽을 바라보며 한방울 두방울 이 흐름되어 금강의 발원지가 되고 동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와는 우리 말의 억양을 달리 하는 가름의 경계이다.
백두대간의 소백줄기가 덕유산을 지나 우리나라 팔대 종산의 하나인 장안산에서 팔공산으로 노령산맥이 되어 마이산으로 이어 지니 산과 산의 협곡자락에 펼쳐지는 곳이 바로 장수군이다.
이곳 호남의 동문에 굽이 굽이 돌아 넘는 험한 산세 만큼이나 산짐승과 도적들이 들끓어 육십여명의 사람이 모여야 재를 넘을 수 있다 하여 육십령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전설이 서려 있는 육십령에 호남과 영남사람의 화합으로 하나됨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부터 난공사 끝에 1997년에 지금의 작은 쉼터를 만들고 팔모형인 전망대를 건립하여 육십령루라 이름한다.
육십령루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글/사진 임영식기자>